字夢のノート(공책)/2024년 日記帳

글잉걸 2-빨간 도장이 비친 등불

자몽미소 2024. 3. 28. 09:36

Morning Letter Greengirl 2

어제 저녁 무렵,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에는 내가 갑이고 그 회사는 을로 칭해 계약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그 회사의 인장이 찍인 종이 계약서 위에 당산서원의 인장을 꾹 눌러 찍고, 동의 계약서를 메일로 보냈다. 일단, 3월 27일부로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내 손에 잡히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마음 밑바닥에 들러붙어 끈적거리던 불안이 성능 좋은 세정제로 닦여나가는 것 같았다. 우선은 이 계약이 성사 될 것인가 했던 불안, 지난 해 가을에 번역원고를 제본해서 일본에 가져갔고, 지인들에게 건넸고, 그런 후 번역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안게 된 후 함께 안을 수밖에 없는 불안이었다. 번역할까 말까 하는 출판사의 회의가 있다는 말을 들은 후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들은 후로 몇 달이 지났다. 그 회사에서 안 될 거라면 다른 회사를 알아보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연락이 왔다.  인문학 도서를 취급하는 다른 출판사를 소개 받았다. 그러자 다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로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 나는 거의 번역출판이 안 될 수도 있다에 마음을 두었다. 일본에서의 출판에 소망이 컸던 만큼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포기하여 덤덤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덤덤하지 않은데 그러는 척하는 나는, 내가 손대는 일이란 게 이런 식인가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서 덤덤해지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잠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가끔은 가기 싫은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가고, 가끔은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뜨개를 하고, 재봉도 하고, 가끔은 책을 읽고, 가끔은 글을 쓰고자 의욕을 보이고, 가끔은 사람들과 만나 웃는다. 그리고 자고, 그리고 먹고, 그리고 날을 보낸다. 내 인생을 무얼하는지 모르면서 보내버리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라는 질문에는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매일들이 떠올라서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못한다. 사실은 도드라지게 시간을 쓰고 온 힘을 쓰는 무엇이 없고, 그래서 그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기 위해 매일의 루틴을 만들어서는 나는 이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나, 나는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조차 잊어버리기 일쑤다. 작심3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고 자조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자조한다. 이 마음 밑바닥에도 불안이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 울겠다.

 

그랬다. 어제 빨간 도장 하나가 찐득한 내 마음의 때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강력한 세정력으로 닦아 주었다. 

계약서에는 일본에서의 출판은 2024년 11월 예정, 당산서원과의 계약기간은 5년이라고 되어 있다. 적어도 11월까지 나는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빨간 도장은 지나온 내 시간에 등불을 비쳐주었다. 

2019년 7월과 8월, 나는 일본의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의 원고를 편집했다. 문장을 고치고 문단을 재배치하며 보냈다. 글의 흐름에 물꼬를 넣고 막는 일로 그 여름을 보냈다. 제주로 돌아와서는 원고의 틈틈으로 들어가 글자 하나하나를 닦고 깍아냈다. 책은 늦가을에 나왔다. 인쇄 영역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거액을 손해보며 재인쇄 하였다. 나는 이 책에 내 시간과 마음을 다 주었다. 그 해 가을 두 권의 책을 한꺼번에 출판하느라 무리했던지  몸이 아팠지만 병원에서 링겔을 맞아가면서도 나는 이 책 <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에 집중했다. 2019년 11월 18일에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2020년부터는 이 책에 꿈을 싣기 시작했다. 일본의 서점 책장에서 보고 싶다는 소망이 꿈틀거리자 번역을 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내 일본어가 전공자의 것이 아니었지만 무슨 방법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속도가 느려졌다. 2020년에는 집 이사를 했고, 2021년부터는 몸 여기저기가 아파 병원에 다니는 일이 늘어났다. 2022년에는 암수술을 했고, 2023년에는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도 실려갔다. 책상에 앉지 못했고, 어느 곳에서도 부탁 받은 바 없는 일이어서일까, 내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자책이 안개처럼 마음을 흐리게 했다.  그 자책감 때문에 기운이 날 때마다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으나 이제는 건강해졌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마다 책상에 앉아 번역원고를 들여다 보았다. 

뭔가 책임감 같은 것이 있을 때 자기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걸 경험했었다. 2013년에 나왔던 책 < 창가학회와 재일 한국인>, <숙명전환의 선물>은 <당산서원 출판사>가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창가학회>에 관한 연구서이다. 그 책의 내용은 일본에서 사는 재일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이었고, 그들을 만난 것은 2006년과 2007년, 2009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한국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겨서 연구자인 조성윤이 원고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 일이었다. 인터뷰 내용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몇 년 동안에 거쳐서 했다. 녹취록 작업은 내 일본어가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가고 1급 능력시험에 합격하게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녹취록 작업을 할 때, 안 들리는 일본어에 속상하면 에잇 하고 도망가듯 때려치웠다가도 돌아와 녹음을 다시 듣게 했던 것은, 일본에서 만난 재일한국인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만들려고 당신을 인터뷰 한다고 말했던 말을 나는 한번도 잊어버리지 못했고, 책을 쓸 사람에게 우리가 뱉어낸 그 말을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답할 말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제의  빨간 도장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서로의 말이 한 권의 책이 되기 까지 내가 들인 시간과 내 마음과 의지도 함께 했음을 알려주었다.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 내가 무엇을 하며 여기까지 살아왔는지를.

그러면 죽을 때 울 일도 없는 것이다.

 

(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아침 09:35, 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