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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소설 3권, 루, 만, 앰

루, 만, 앰 를 처음 만났던 지난 해에 베트남을 월남으로 이야기 하던 1975년의 어느 날을 기억했다. 그날 5학년 1반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로 오더니, 월남이 망했다. 전쟁이 끝났다, 라고 말했다. 매우 진지한 표정이어서 가만히 듣기만 했었는데 그 외 다른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 어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던 월남치마와 월남이란 나라가 망한 것과 나보다 1년 위인 S의 아버지가 월남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잘 연결하지 못했다. 군대는 20대의 젊은이만 다녀오는 게 아닌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흘려 보냈고 월남이나 베트콩 이라는 말이 생소한 만큼 빨리 치워버리면서 베트남은 내 어린 시절에 잠시 왔다가 잊혀졌다. 어느 날 보니 베트남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여행..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양영희 감독의 소설이다. 주인공 박미영의 대학생활과 북한방문, 그 후 이야기에는 감독의 삶이 겹쳐 보였다. 소설에서 북한에서 만난 언니의 말은 실제로는 감독의 오빠가 여동생인 양영희 씨에게 했던 말일 것이다. "후회하지 않게 사는 법,주변사람들에게 맞추지 않기" 그리고 그 말대로 양영희 감독은 후회없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충실히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ㅣ맡겨진 소녀, 말없는 소녀

2023년 8월 3일, 책을 덮으며 어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한뼘 책방 편지쓰는 여자들의 글)에 외숙모의 이야기를 썼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보았을 테니 외숙모에게는 나와의 시간이 10년이겠지만, 내가 사람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하고 알아들을 때부터 기억이 생긴 것을 감안하면 나에겐 고작 5년 정도가 외숙모와 보낸 시간이다. 하지만 같은 집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가 버렸기 때문에 외숙모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일 년에 고작 며칠에 불과하다. 어쩌면 외숙모와 내가 함께 했다는 것조차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명절에 시골에 왔다가 나를 데리고 외삼촌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 일도 서너번이나 될까, 두 번 쯤 그런 걸 내가 ..

여자없는 남자들/ 드라이브 마이카

" 그건 병 같은 거예요.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가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 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 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한다." 좀 자야겠다고 가후쿠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 조명을 받고 주어진 대사를 한다. 박수를 받고 막이 내려진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곳은 정확하게는 이전과 똑같은 장소가 아니다. - 드라이브 마이카 59-60 쪽에서. 이 문장들이 있어서 이 소설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실..

어머니의 유산、 母の遺産

책과 나의 끈이라고 한다면 --일본어로 읽은 지 10년 만에 한국어로 읽었다. 일본에서는 10년 전에 **문학상을 받기도 해서 서점 매대에서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우리말로는 올해 번역이 되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일본어 소설도 원어로 읽기 시작했는데 2013년 봄에 이 책을 발견했고, 꼭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구입했다. 내 일본어 실력으로는 읽기에 벅찬 장편소설이어서 읽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사전을 찾으며 읽는 동안 일본어 실력이 좀 늘었는지 여름에는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다. 추리소설이라 다음 이야기가 또 너무 궁금하게 하는 소설이기에 밤을 새며 읽다 보니 3일만에 읽었다. 어머니의 유산의 문장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장이 읽기 쉬운 일본어인 것도 한몫 했다. 가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2023년의 독후감 전영웅 지음 , 도서출판 흠영 1. 아직도 여전한 폭력 책의 첫 번째의 글, 의 이야기를 읽으며 뱀을 볼 때처럼 징그러웠다.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 일, 그것도 힘이 센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에는 문장의 행간에 푸른 멍이 가득했다. 아내를 때려놓고 치료하러 데리고 와서는 일하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남자의 모습은 무언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글 속의 여자는 내 어머니 같았고, 의젓한 남편을 연기하는 남자는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로 보였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모여 살던 내 고향마을에서 툭하면 싸움하는 부모들의 자식으로 살았던 우리들은 장차 힘이 센 것들을 두려워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하는..

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이 세상에 있기 전, 내 나이를 거쳐간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여자들의 이야기. 험하고 무례한 시대를 지나 당도한 오늘에도, 여성들은 견딘다. 시간을. 견디며 거칠어진 마음밭,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꽃이 피던 시절은 있었다. 다만 꽃밭을 뭉개던 폭력은 오래도록 그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최진영의 소설을 모두 읽고 싶다는 마음에 주문한 또다른 책이었다. 다음은 을 읽어보겠다. 책을 읽고 스마트폰으로 여기에 이렇게나마 메모를 해두어야겠다. 지난 달에 읽은 최진영의 다른 소설 의 내용을 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어젯밤 책장을 정리하다가 알았다. 이런 망각이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10년 전부터 쭉 이런 넋두리를 해 온 것 같다. 놀랍지도 않는 증상이다. 그래서 티스..